교회다운 몸부림(5-2)
최원석
2013.01.30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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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부제 : 삼천포 나의 고향
올해 첫날을 ( 1-1) 나의 고향 삼천포에서 보냈다.
사연인즉 올해까지 대학 입시 4 수를 하는 조카를 데리고
삼천포 나의 고향을 갔었다.
나는 3수생 출신이라 "과부 사정 과부가 안다는 말처럼"
4수를 내리 하는 조카는 공부를 잘하는 편이다.
소위 명문 스카이 대학을 목표로 하다가 보니 이지경 까지...
우리는 보통 입시 전쟁, 입시 지옥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
오랜만에 보는 조카는 공부에 찌들어 모양이 약간 맛이 간 듯하였다.
망가진 모습이 공부에 많이 지친 듯하다.
조카의 입에서 나오는 말
삼촌 " 치과의사 라서 좋아 ?" 물었다.
나는 '그저 그래' 하였다.
힘든 경제적 여건이 자주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현실앞에서,
또 조카는 자신은 꿈이 없이 사는 처지라고 한다.
나는 키가 182 , 미남 조카에게 나도 그저 그렇게 사는 입장이라고,
물론 나는 다시 선교사를 하고 싶지만 아직은 여건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어릴적 나서 자란 삼천포는 나의 고향이지만
어느새 나에게 고향 삼천포는 이방인(나그네) 방문 같았다.
4수생 조카에게 나의 형인 자기 아버지 랑 함께 자란 이곳 삼천포는
이제는 향수만을 주는 고향이라고 하였다.
특히 나의 고향 삼천포는 70년대 방송에서 나온 말
"잘나가다 삼천포로 빠진다" 는 말 탓에
나는 고향이 부산이라고 늘 말하였다.
세월이 흐르니 이제는 당당하게 말하는 나의 고향 삼천포는 이미 타향 같았다.
나는 어느새 고향을 잃고 사는 처지가 되었다.
지금 나의 고향은 내가 사는 곳이라고 말하지만
이곳은 황량한 도시의 한 모퉁이가 아닌가 !
나느 가끔 택도 없는 상상을 하곤 한다.
그래서 별명이 시다바리 누군가 돈키호테 라고 불렀다.
우리 흥덕 향상이 고향 같은 공동체가 되면 어떨까 싶다.
실향민이 모여서 이북 출신의 교회
경상도 출신이 모여서 된 영남 교회
전라도 출신이 주축인 호남 교회 등등이 아닌,
가족 같은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
절망을 보듬는 희망이 넘치는 교회
저 분 처럼 나도 믿음 생활하고 싶은 교회
고향은 엄마 품같지 않는가 !
엄마의 젖무덤에 안겨 새록 새록 자는 아기는 얼마나 행복한가 !
이런 흥덕 향상을 그려 본다.
고향,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는 분들이 우글 우글 하는 공동체로서,
약간 또라이 같은 표현인데,
하나님 아버지
성령 어머니 또는 교회 어머니
(일부 신학자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엄마 역할을 한다고 하지요)
다음은 "건강한 나, 교회 에 대하여
행복부의 독백은 계속,
졸필을 감사합니다.
댓글목록 2
박동진님의 댓글
옛날 시골엔 교회를 곧잘 언덕위에 세워놓은 경우가 많았죠. 어릴때 올라가기는 힘들었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마을에서 눈만 돌리면 늘 교회를 바라볼 수 있도록, 교회종소리가 이 골짝 저 골짝에 울리도록 높은 산위에 위치해 놓은 것 같습니다. 언젠가 사람들이 그 교회를 장터한마당 옆에 옮겨 놓아 버렸더군요. 마치 마음의 고향 같은 나만의 교회가 사라져 버린 듯합니다. 지금도 고향에 가면 제일 먼저 거기를 쳐다보지요.
흥덕향상교회가 우리 모두에게 산위의 교회처럼 언제든 볼 수 있고, 사랑의 소리가 포근함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그런 교회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야 겠습니다. 특히 아이들, 청소년과 어린이 그리고 유아들이 성장하여 어릴적 다니던 교회를 생각하면서 참 평안을 갖고, 아플때마다 힘들때마다 돌아와 회복받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되겠습니다. 우리의 후손을 위해서 장터한가운데 교회가 되지 않도록 힘써야 겠네요.
최원석님의 댓글
예 박집사님
어릴적 엄마 따라 다니던 벌리(삼한)교회는
이제 버스 터미널과 이웃 사촌으로 변해 있더군요